1963년 5월 29일, 일요일이었다.
그날 베트남의 사이공 시내 판딘퐁 거리에 일단의 스님들이 행진해왔다. 황색 법의를 입은 비구와 회색 법의를 입은 비구니들이 조용히 저항의 표정으로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그 행렬의 선두에는 승려들을 가득 태운 자동차가 가고 있었다.
네거리에 이르러 차에 타고 있던 스님들이 내렸다. 행진은 멈추어졌고 스님들은 차를 둘러쌌다. 그리고 염불이 시작되었다.
중앙으로 티치 광툭 스님이 걸어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한 스님이 차에서 휘발유통을 들고 나왔다. 비구니들의 염불은 눈물로 변했다.
광툭 스님의 머리 위로 5갤런의 휘발유가 부어졌다. 휘발유가 온몸을 적시자 광툭 스님은 성냥불을 당겼다. 강렬한 불꽃이 일며 스님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스님의 결가부좌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십여분 쯤 지나 몸은 숯이 되어 쓰러졌다. 스님의 분신은 철저히 준비된 것이었다. 그리고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고딘디엠 정권이 불교기를 게양한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대통령령를 취하하고, 가톨릭을 신봉하는 현정권의 불교에 대한 법적 차별을 철회하며 불교 신앙 의식 수행과 전도의 자유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5월 8일에 있었던 후예시의 대량학살 희생자 가족에게 배상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였다.
광툭 스님의 자해는 불교도들의 저항을 촉발하였다. 그것은 불타의 자비와 지혜를 중생에게 바로 전하기 위한 보살행이기도 했다.
이에 자극받은 한국의 김동리는 '등신불'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등신불은 죽음을 눈앞에 둔 스님들이 사바 세계에 남기고 갈 자신의 육신을 깨끗하게 처리하는 방식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선종의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 그들이 모두 등신불로 남았다. 이후 설봉 의존 스님, 운문 구언 스님, 석두 희천 스님, 선무외삼장, 감산 덕청 스님과 신라의 자장법사가 전통을 이었다. 이들 스님들은 엄격한 금식 과정을 통해 몸의 수분을 최대한 뺀 상태로 선정과정에서 열반에 든 후 옻칠이나 금을 입고 등신불이 되었다.
중국 위앙종의 앙산 스님의 제자인 경통 스님의 소신 공양은 유명하다. 어느날 자신의 임종을 예견하고 제자들을 시켜 뜰 앞에 장작을 쌓아놓게 하였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그는 횃불을 치켜들고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 올라 앉았다. 그리고 주장자를 든 채 횃불을 떨어뜨렸다. 불속에서 그는 고요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소신공양이든 육신 성도의 등신불이든 그것은 스님들의 고고한 죽음의 수용과정이며 중생제도와 성도의 염원을 담고 있다. 또한 삶과 죽음의 분별을 뛰어 넘는 절대자유의 경지를 엿보게 하기도 한다.
1998년 6월 27일 새벽. 경기도 가평의 감로사.
서울 승가사에 머물고 있던 충담 스님이 택시를 타고 감로사에 올라왔다. 주차장 앞 나뭇더미를 버려둔 그 자리에 좌대를 마련했다. 나뭇더미를 추스려 쌓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손수 불을 당겼다. 이 때가 새벽 4시였다.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 호명산과 감로사 미륵불만이 스님의 가는 모습을 무심하게 굽어볼 뿐이었다.
이 나라 분단된 국토가 하나로 통일되고 사회가 안녕하며 헐벗음과 괴로움이 없어지며 종단이 화합해 불국토가 앞당겨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내용의 열반송을 남기고 충담 스님은 그렇게 갔다. 세수 85세, 법랍 69세. 이 땅의 최초의 소신 공양이었다. 다만 독재 치하에서 전태일과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있었을 뿐.
우리나라에선 조선 순조때 일여 스님의 예가 전해진다. 일여스님의 예는 이렇다. 1832년 금강산 만회암에 주석하시던 스님은 암자 뒷편의 관음봉에 올라 백일 기도를 드리면서 '찬 화로 안에서 백일 안에 연기가 오르지 않으면 이 육신을 불태워 부처님께 공양하리라'고 서원했다.
백일이 지나도 연기가 오르지 않자 스님은 만회암 앞마당에 장작을 쌓고 그 위에 올라 불을 붙였다. 도반인 백인 스님이 말렸으나 그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백인 스님은 '의상 스님께서도 금강산의 맑고 깨끗한 대도량을 더럽힐까 봐 이 산에서 입적하지 못했다며 일여스님이 소신 공양을 해도 극락왕생을 못할 거'라고 설득했다.
일여스님은 백인스님의 충고를 받아들여 불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몸은 이미 검게 그을은 후였다. 백인스님이 살인 방조자로 지탄을 받게 되자 일여스님은 자신이 극락왕생을 위해 한 일이라며 백인 스님을 변호하고 그날 밤 입적했다.
소신이란 무엇인가.
소신은 생명의 희생이요 마음의 헌공이다. 상대되는 모든 것을 초월하며 절대 지상의 세계에서 빛을 투영하는 것이다.
'내가 불탄다, 내게 불이 붙었다, 내가 탄다, 내가 죽는다.'
이러한 여지가 하나없이 사라진 절대삼매에 들어간 것이다.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 '스스로 소신하면 그 광명은 두루 80억항하사 세계를 비춘다'라고 하였다.
제 손등에 촛농만 떨어져도 뜨겁기 그지없다. 그런데 제 몸에 기름을 끼얹고 장작더미 위에 꼿꼿이 앉아 화염 소신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우리는 육근의 분별을 애탐하면서 사는 것을 행복이라 한다.
충담 스님의 소신 공덕의 광명이 무명의 번뇌에 사로잡힌 이 강산을 밝게 비추시라.
***언론들은 충담 스님의 소신 공양을 짤막하게 보도하고 말았다.
이 글은 <법보신문>에 실린 글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98, 7 均)